국내 경영관리시스템의 발전과 설비관리 발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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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작성일 : 25-12-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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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시스템 - 설비관리 칼럼
국내 경영관리시스템의 발전과 설비관리 발전사
스마트팩토리연구소 소장
1543년 8월 5일 명나라 닝보를 출항한 중국 상선이 태풍의 영향으로 길을 잃고 일본 규슈 남쪽 다네가섬에 표류했다. 다네가섬 영주 사케코키는 그들을 배척하지 않고 도와주었다. 우연히 포르투갈 상인이 갖고 있는 조총(뎃포)의 위력을 보게 되었다. 영주는 그 위력에 놀랐다. 부랴부랴 거금을 들여서 두 자루를 구매했다. 구매하면서 조총 제조법과 사용법까지도 전수받았다. 영주는 조총을 가지고 그 지역의 당대 장인인 야이타 기요사다를 불렀다. 그리고 제조법과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똑같이 만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조총을 만드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조총 제조는 실패로 끝났다.
1544년 포르투갈 상선이 직접 다네가섬을 찾아왔다. 조총 제조에 희망이 생겼다. 장인 야이타 기요사다는 영주의 힘을 빌려 상선에 올라가 조총 제조법을 다시 배웠다. 그 후 1년 포르투갈의 조총과 똑같은 조총을 만들었다. 조총 위력과 제조에 대한 소문은 전국 다이묘들에게 전해졌다. 가장 빠르게 행동으로 옮긴 다이묘는 바로 오다 노부나가였다. 그는 서둘러 조총 제작의 중심지인 오사카 지역을 장악했다. 다네가섬 영주는 그에게 조총 사용법과 제조법을 진상했다. 조총 개발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총열에 강선을 추가하고 전술 측면에서 삼단 사격법까지 개발했다. 삼단 사격법이란 3인 1조로 사격을 하는 방법이다. 사격을 잘 하는 한 명에게 사격을 전담시키고 나머지 두 명은 장전을 해주는 방법이다.
1574년 5월 일본 전국시대의 획을 긋는 전투가 일어났다. 바로 나가시노 전투로 삼단 사격법으로 훈련된 조총부대가 등장했다. 당대
최강의 기마대를 보유한 다케다 가쓰요리 부대 12,000명을 오다 노부나가 조총부대 3,000명이 섬멸했다. 한마디로 무뎃포(조총을 안 들고 전쟁에 나간) 부대가 뎃포 부대에 대들었다가 패한
대표적인 결과였다.
1590년 3월 쓰시마 도주 요시토시는 조선 조정에 공작새 두 마리와 조총, 창, 칼 등을 진상했다. 이
진상품에 대해 선조의 관심은 없었다. 류성룡의 징비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임금께서는 공작은 날려 보내고, 조총은
군기시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군기시라는 곳은 조선시대에 무기를 개발하는 관청이다.
무기를 개발하는 관청이지만 조총 개발은 하지 않았다. 쓰시마 도주에게 받은 상태 그대로
창고에 보관되었다.
조선 조정은 조총 같은 신병기에 왜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이유는 하나였다. 지난 140년 동안 전쟁이 하나도 없던 태평성대였다. 조정에 어느 누구도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양 무기에 대해 인색했다. 또한 그것을 진상한 사람이 변방
왜인인 것도 한몫 했다.
1592년 5월 2일, 20일 만에 왜군이 한양에 들어왔다. 2번대 가토 기요마사가 남대문으로
제일 먼저 들어왔고, 1번대 고니시 유키나가가 두번째로 동대문으로 들어왔다. 400년 뒤 일제강점기 시 조선총독부는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국보 1호에
남대문을 그리고 보물 1호에 동대문을 지정했다. 그 수모를
우리는 아직도 바꾸지 못하고 갖고 있다. 여기까지가 조총이라는 기술로 본 스마트팩토리 설명이다. 한 국가는 신기술을 빨리 자기 것으로 했고 다른 한 국가는 기존 기술에 자신감으로 신기술을 배척했다. 그 결과 20일 만에 수도가 빼앗기는 일이 벌어졌다. 기술에 의한 스마트팩토리는 단기 경쟁력을 위한 것이다.
스마트팩토리가 무엇인가? 스마트팩토리는 공장에 초점을 둔 4차 산업혁명의 한 분과로 기술 변화에 의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조총이라는 신기술이
전쟁 초기 양상을 바꾸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은 평준화가 됐다. 어떤 경우는 늦게 도입한 기술이 더 큰 효과를 보기도 했다.
1592년 7월 8일은 임진왜란의 전세를
바꾼 역사적인 날이다.
왜군은 전라도의 곡창지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진주성을 지나 전라도로 가려고 했다. 용인에서 대승했던 왜군이 내려와 군산에 모였다. 왜군은 이치와 웅치 고개를 넘어 진주성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고바아키와
다카카게 대군은 권율과 황진 그리고 황박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의병에게 대패했다. 이날 쓰러진 조선군과
의병의 수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같은 날 남해안 한산도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잡으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와키자카
야스하루 수군이 이순신 장군과 바다에서 맞섰다. 돌격과 백병전을 주로 하던 왜군에 이순신 장군은 학익진으로
맞섰다. 결과는 조선군의 큰 승리였다. 이날의 승리는 조선
수군의 전략과 투지 그리고 희생의 결과였다. 이순신 장군의 전략 전술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첫 번째가 백병전은 무조건 피하라는 것이다. 왜군의 소년 사무라이와
조선 창병 7명이 무참히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장군은 백병전을 피했다.
둘째는 조선인이 사는 섬의 근처에서는 전투하지 말라는 것이다. 포구에서 전투한 적은 많지만, 바다에서 해전을 할 때는 가능한 무인도 근처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래야
패한 왜군이 섬으로 도망해도 조선 백성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서 전투에 임했다. 명량해전이 대표적이다.
1592년 7월부터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하
DT/DX)으로 생각할 수 있다. 기술의 변화로 경쟁 우위를
갖는 스마트팩토리와 다르게 경영 전략적인 변화로 경쟁 우위를 갖는다는 DT/DX는 중장기적이다.
아직도 국내 기업 중에는 스마트팩토리나 DT/DX를
추진하고 있어도 스마트팩토리와 DT/DX를 구분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22년 국내 기업의 DT/DX 추진 현황을 보면 아래와 같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12.2%가 적극적인
추진을 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9.6% 정도가 적극적인 추진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 제조 기업은 단 16.1% 정도이다. 문제는 적극적인 추진 기업의 90%가 실패를 하고 있다는 맥킨지의
보고서를 기억해야 한다.
스마트팩토리와 DT/DX 추진에는 기술뿐
아니라 프로세스와 사람까지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시대적 환경 변화와 경영관리시스템
그리고 설비관리시스템을 같이 검토해야 한다.
그럼 경영관리시스템과 설비관리시스템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발전을 해왔고 스마트팩토리와
DT/DX 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풀어보려고 한다.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 흐름을 살펴보려고 한다. 1960년~1970년 당시 국내 제조기업은 많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라 전
국토가 재건의 과정에 있었다. 제품보다는 상품이 많았고 이런 상황은 197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그 결과 마케팅은 없고 세일즈만 있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은 수요가 공급보다 큰 것이다. 제조기업은 24시간
풀가동을 했다. 원부자재만 있다면 생산은 계속됐다. 원부자재
수급(Material Requirement)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이 시대를 Material Requirement Planning, MRP-1 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의 설비관리는 아마도 눈치챘을 것 같다. 그
당시 대부분 제조기업의 공장 설비가 24시간 풀가동을 했다. 공장이
꺼지기 전까지는 계속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BM(Breakdown
Maintenance, 사후보전)이 기본적인 보전 활동이었다.
1980년 원부자재 수급관리는 원활하게 되었는데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24시간 풀가동을
하던 기계가 고장이 나고 운전자가 과로로 쓰러졌다. 기업들은 부랴부랴 설비와 직원을 Capacity로 명명하고 원부자재와 같이 관리를 하게 되었다. 제조를
위한 모든 리소스를 관리했다. 이 시대를 Manufacturing
Resource Planning, MRP-2 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에 들어오면서 비로소 설비도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업에서 PM(Preventive Maintenance, 예방보전)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시스템은 마스터 관리와 월별 수행
PM 목록을 인쇄할 정도의 수준 정도였다.
1980년부터 1990년 중반까지 국내는 건설 붐으로 제조기업 수도 늘고 기업 내
공장 수도 늘었다. 경쟁사가 많이 늘어났다. 이제는 24시간 풀가동을 하면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진
것이다. 제조기업들은 만든 제품을 사줄 수 있는 수요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바로 수요계획(Demand Planning)이 요구되는 시대였다. 이 시대를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ERP 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에 들어오면서 프로세스가 내재된 전산 시스템이 등장했다. 설비관리도 CMMS (Computerized Maintenance
Management System)이 정착한 시대였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이 가능한 전
활동에 활용됐다. PaM(Proactive maintenance, 선행보전)이 가능해졌다.
2000년 인터넷의 등장은 버블 닷컴을 불렀지만 플랫폼 시대(WEB 2.0 시대)를 불러왔다. 인터넷은 기업에 여러 가지 고민을 주었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고객 불만을 기업 담당자에게 전화로만 했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고객 불만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물류의 효율화 측면에서도 인터넷은 많은 정보를 주었다. 결국 기업은 고객관리를 위한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계관리)과 SCM(Supply
Chain Management, 공급망관리)이 ERP와
연계해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데이터를 이용한 모델을 가지고 고장예측을 하는 기술들이 나왔다. 신기술에 의한 예지보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예지보전은 40년 전 Terry Wiremann의 Maintenance Decision Tree에서도 언급한 사항이다. 당시
진동 분석, 열화상 분석, 소닉 분석 그리고 오일 분석부터
파악해야 한다. 예지보전은 단기로 추진하다 보면 99%가
실패한다. 그 이유는 이 기술이 하인리히 법칙의 ‘1:29:300’에서
징후인 300에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제조기업에서는 제조 운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라는
명제로 구축했던 시스템들을 원격에서 활용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후죽순처럼 나온 것이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제조운영시스템)이다. 회계를 중심으로 한 ERP 시스템과 운전을 중심으로 한 MES의 연계된 구성이 제조기업의 표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 시대 기술의 발전은 스마트폰의 등장에 힘입어 광범위하게 발전했다. 설비관리 역시 기존의 일방적인 분석에서 깊이를 더한 처방전까지 언급했다. PsM(Prescriptive
Maintenance, 처방전보전)이 등장했다.
2016년 세계 경제 포럼(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은 시작되었다.’라는 말 한마디는 전 세계를 흔들어 놓았다. 모든 기업이 스마트팩토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마트팩토리의 제약이 보였고, 그 제약에 대응하기 위해 DT/DX가 등장했다. 아직 SI기업에 의해 IT관련으로 드러난 모습은 없지만, 현재의 움직임으로 봤을 때 DT/DX가 경영관리시스템 분야까지도 포함할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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